AI가 기획서를 쓰는 시대, PM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6 min read0 viewsBy Colemearchy
AI 시대PM 역할프로덕트 매니저AI 협업커리어 전환

기획서를 10분 만에 뽑아낸 날의 충격

"이거... 내가 3일 걸려 쓴 거랑 똑같은데?"

지난 3월, ChatGPT에게 신규 기능 기획서를 요청했다. 사용자 페르소나부터 시작해서 유저 플로우, 핵심 기능 명세, 예상 임팩트까지. 10분 만에 A4 15페이지 분량이 나왔다. 디자이너 출신으로 픽셀 하나하나 고민하며 PM 커리어를 쌓아온 나에게, 이건 꽤 큰 충격이었다.

더 충격적인 건 그 다음이었다. 개발팀 리드가 그 기획서를 보더니 "콜리, 이번엔 디테일이 좀 약한데?"라고 했다. AI가 뽑아낸 기획서는 그럴듯했지만, 우리 서비스만의 맥락이 빠져있었다. 기술 스택 제약사항, 레거시 시스템과의 충돌 가능성, 우리 유저들의 특수한 행동 패턴—이런 건 AI가 모른다.

그날 이후 6개월간, 나는 의도적으로 AI를 최대한 활용하며 일했다. PM의 역할이 정말 사라지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PM의 역할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완전히 재정의되고 있다.

AI가 대체하는 것들 vs 대체 못하는 것들

AI가 잘하는 것 (솔직히 나보다 빠르다)

문서 작성의 80%

  • PRD 초안 작성: 5일 → 2시간
  • 경쟁사 분석 리포트: 3일 → 1시간
  • 유저 인터뷰 인사이트 정리: 2일 → 30분

우리 팀은 지난 분기에 Notion AI, ChatGPT, Claude를 적극 활용했다. 전체 문서 작성 시간이 평균 67% 감소했다. 대신 그 시간에 뭘 했냐고? 밑에서 이야기하겠다.

데이터 분석과 패턴 인식

3개월치 사용자 로그를 분석해달라고 하면, AI는 5분 만에 15가지 인사이트를 뽑아낸다. 이탈률이 높은 지점, 예상치 못한 사용 패턴, A/B 테스트 결과 해석까지. 예전에 데이터 애널리스트에게 요청하면 일주일 걸리던 일이다.

AI가 절대 못하는 것 (여기가 진짜다)

1. 정치적 맥락 읽기

"이 기능을 왜 지금 만들어야 하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기획서 어디에도 없다. CEO가 최근 경쟁사 발표를 보고 불안해한다는 것, CFO가 다음 분기 투자 유치를 준비 중이라 임팩트 있는 숫자가 필요하다는 것, 디자인팀이 리브랜딩 작업 때문에 리소스가 부족하다는 것—이런 맥락은 사무실 복도와 1:1 미팅에서만 얻을 수 있다.

지난달, AI가 제안한 완벽한 로드맵을 씹어먹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지금 CTO가 인프라 마이그레이션 때문에 미쳐있어서, 새 기능 배포하면 죽일 듯이 쳐다본다"는 거.

2. 애매한 것을 명확하게 만드는 과정

PM의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을 만들지"를 결정하는 게 아니다. "왜"와 "어떻게"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이다.

CEO: "사용자 retention을 높여야 해" AI: "푸시 알림 기능을 강화하세요" 나: "왜 retention이 낮은지부터 파악해야 하지 않나요? 온보딩 문제일 수도, 코어 밸류 전달 실패일 수도 있잖아요."

AI는 질문에는 답하지만, 질문을 재구성하지는 못한다. 문제를 다시 정의하는 건 여전히 사람의 영역이다.

3. 팀을 설득하고 동기부여하는 것

개발자한테 "이거 만들어주세요"라고 하는 건 Junior PM이다. Senior PM은 "왜 이게 중요한지", "이게 성공하면 우리 커리어에 어떤 의미인지", "이 과정에서 뭘 배울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AI가 아무리 완벽한 기획서를 써도, 새벽 2시에 배포 장애 나서 개발자가 "왜 내가 이걸 고쳐야 하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기획서는 휴지가 된다.

PM의 역할, 3가지로 재정의되고 있다

1. Editor에서 Director로

예전: 내가 직접 기획서 작성 → 피드백 받기 → 수정
지금: AI에게 초안 생성 지시 → 맥락 추가 → 방향 조정 → 최종 검수

영화 감독이 직접 촬영하지 않듯이, PM도 더 이상 모든 문서를 직접 쓸 필요가 없다. 대신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 "어떤 톤으로 전달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시간을 쓴다.

내가 요즘 하는 방식:

  • ChatGPT에게 초안 요청 (구체적 프롬프트 작성에 20분)
  • 우리 서비스 맥락 추가 (30분)
  • 스테이크홀더별 맞춤 조정 (40분)
  • 총 소요시간: 1.5시간 (예전엔 8시간)

2. Executor에서 Connector로

디자이너 출신이라 그런지, 나는 초기에 "내가 다 할 수 있다"는 함정에 빠졌었다. 디자인도 보고, 개발 스펙도 쓰고, QA도 하고. AI 시대에 이건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진짜 PM의 가치는 연결에 있다:

  • 개발팀의 기술적 제약을 디자인 언어로 번역
  • 경영진의 비즈니스 목표를 개발 로드맵으로 변환
  • 사용자 피드백을 우선순위 결정으로 연결

AI는 각 도메인의 지식을 갖고 있지만, 도메인 사이의 번역을 못한다. 그게 PM이 하는 일이다.

3. Planner에서 Sense Maker로

가장 큰 변화는 여기다. AI가 계획을 세우면, PM은 의미를 만든다.

예전에는 "Q3에 이 기능 5개 런칭"이 목표였다면, 지금은 "왜 우리가 이 방향으로 가는지", "이게 회사의 미션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 팀은 2주마다 'Context Sync'라는 미팅을 한다. 로드맵 리뷰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 하는 일이 왜 중요한지" 다시 정렬하는 시간. AI가 제안한 100가지 아이디어 중에서, 우리 팀의 철학과 맞는 3가지를 고르는 게 PM의 일이다.

PM으로 살아남기 위한 구체적 실천법

1. AI를 두려워 말고, 매일 괴롭혀라

나는 매일 아침 30분을 'AI 실험 시간'으로 쓴다:

  • 월: 경쟁사 기능 분석 요청
  • 화: 사용자 페르소나 생성 및 검증
  • 수: 기술 스펙 초안 작성
  • 목: A/B 테스트 가설 생성
  • 금: 주간 회의록 분석 및 액션 아이템 추출

6개월 하다 보니, AI의 강점과 한계가 몸으로 느껴진다. 그래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

2. 사람에게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라

문서 작성 시간이 줄어든 만큼, 1:1 미팅을 2배로 늘렸다:

  • 개발자들과 주 1회 커피챗 (기술 트렌드, 커리어 고민 공유)
  • 디자이너와 격주 크리틱 세션 (컨텍스트 정렬)
  • 영업/CS팀과 월 1회 필드 인사이트 미팅

AI는 데이터를 주지만, 사람은 맥락을 준다. 둘 다 필요하다.

3. "왜"를 묻는 근육을 키워라

AI의 답변을 받았을 때, 무조건 3번 더 파고든다:

  • AI: "푸시 알림을 활성화하세요"
  • 나: "왜 푸시 알림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해?"
  • AI: "retention 데이터 상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 나: "우리 서비스는 B2B SaaS인데, 푸시가 오히려 방해 아닐까?"
  • AI: "맞습니다. 대신 이메일 다이제스트가..."

이런 식으로 AI와 대화하다 보면, 결국 더 나은 질문을 하는 법을 배운다. 그게 PM의 핵심 역량이다.

4. 전문성을 T자에서 π자로

디자이너 출신이라는 백그라운드는 여전히 무기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한 가지 전문성만으로는 부족하다.

나는 최근 6개월간:

  •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AI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 기본적인 SQL 쿼리 (데이터 직접 뽑아보기)
  • 비즈니스 모델 분석 (단위 경제학 이해)

이 3가지를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전문가 수준은 아니지만, 각 팀과 대화할 수 있는 최소한의 언어를 갖췄다. AI는 만능이 될 수 없지만, PM은 제너럴리스트가 되어야 한다.

5. 실패를 문서화하라

AI는 성공 케이스만 학습한다. 하지만 PM의 진짜 배움은 실패에서 온다.

나는 분기마다 'Failure Log'를 작성한다:

  • 3Q 2024: "AI 추천 기능을 너무 믿고 사용자 검증 없이 개발 → 런칭 2주 만에 롤백"
  • 교훈: "AI의 논리가 완벽해도, 사용자의 감정은 비논리적이다"

이런 경험은 AI가 절대 알려줄 수 없다. 그리고 이런 게 쌓여야 시니어가 된다.

결국, PM은 더 PM다워져야 한다

6개월간의 실험을 정리하면:

AI가 대체하는 것: 반복적 작업, 데이터 정리, 문서 초안
PM이 더 집중해야 할 것: 맥락 이해, 의미 부여, 사람 연결, 의사결정

PM이 사라질까 봐 두려워할 필요 없다. 오히려 "기획서 쓰느라 정작 기획을 못하던" 시대가 끝났다는 게 해방감이다.

AI는 PM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나쁜 PM을 걸러내는 필터가 될 것이다. 문서만 잘 쓰면 되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왜 이걸 만들어야 하는지", "어떻게 팀을 설득할 건지", "실패하면 어떻게 pivot할 건지"를 보여줘야 한다.

나는 디자이너에서 PM이 되면서, 픽셀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AI 시대에는, 알고리즘보다 맥락이 더 중요하다는 걸 배우고 있다.

당신은 어떤 PM인가? AI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나, 아니면 AI가 절대 못할 일을 하고 있나?


P.S. 이 글은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다. 하지만 여기 담긴 실패와 고민, 그리고 새벽에 느낀 위기감은 100% 내 것이다. 그게 차이다.

AI 시대 PM의 역할 변화: 6개월간 AI와 일하며 배운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