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cueTime 6개월 쓰고 깨달은 것: PM의 시간은 어디로 사라지는가
나는 내가 하루 10시간 일한다고 믿었다
작년 9월, 나는 확신했다.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저녁 8시까지 앉아있으니까, 최소 10시간은 일하고 있다고. 그런데 이상했다. 왜 이렇게 바빠 죽겠는데 정작 중요한 일은 안 끝나 있을까?
그래서 RescueTime을 깔았다. 6개월이 지난 지금, 데이터는 냉정하게 말해준다. 내 착각이 얼마나 컸는지를.
평균 실제 생산적 작업 시간: 4시간 37분. 나머지 5시간은? 슬랙 창 전환하기, 지라 티켓 읽다가 다른 티켓 클릭하기, "잠깐만" 하고 열어본 트위터에서 30분 증발. PM이라는 직업의 본질적 문제인지, 아니면 내 문제인지 구분이 안 갔다.
데이터가 보여준 3가지 블랙홀
1. 커뮤니케이션 지옥: 하루 평균 3시간 12분
슬랙 1시간 48분, 이메일 52분, 줌 미팅 32분. 합치면 3시간이 넘는다. 이게 PM의 숙명이라고? 처음엔 그렇게 합리화했다.
근데 RescueTime의 "Focus Time" 리포트를 보니 충격적이었다. 2시간 이상 연속으로 집중한 날이 6개월간 단 9일이었다. 9일. 126일 중에.
PM은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맞다. 근데 PRD 쓰는 것도, 데이터 분석하는 것도, 로드맵 그리는 것도 PM 일이다. 그런데 이런 Deep Work는 언제 하라는 거지? 저녁 8시 이후?
디자이너 출신으로서 특히 더 답답했다. 디자인할 땐 최소 2-3시간은 몰입해야 뭐라도 나왔는데, 지금은 30분 집중하면 누가 멘션을 날린다.
2. 컨텍스트 스위칭: 15분마다 한 번
RescueTime Premium 기능 중 "App & Website Detail"을 보면 끔찍하다. 평균적으로 15.3분마다 다른 앱으로 전환하고 있었다. Figma → Slack → Notion → Jira → Linear → 다시 Slack.
Cal Newport가 "Deep Work"에서 말한 게 이거다. 컨텍스트 스위칭할 때마다 뇌가 이전 작업의 "잔여물(residue)"을 완전히 제거하는 데 평균 23분이 걸린다는 연구. 그런데 나는 15분마다 전환하고 있었으니, 한 번도 제대로 집중한 적이 없는 셈이다.
특히 충격적이었던 건 "Pulse" 기능으로 본 내 생산성 점수. 상위 25%에 들어간 날이 전체의 11%밖에 안 됐다. 나머지 89%의 날들은 그냥... 시간이 흘러갔다.
3. 가짜 생산성: "일하는 척" 2시간
RescueTime은 잔인하게 정직하다. Notion에서 30초마다 탭 바꾸기, Linear 티켓 10개 클릭했다가 아무것도 안 하고 닫기, 슬랙 DM 읽고 답장은 안 하기. 이런 건 "Productive Time"으로 카운트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시간이다.
6개월 데이터를 보니 이런 "가짜 생산성" 시간이 평균 하루 2시간 정도 됐다. 일하는 것 같은데 실제론 불안함을 달래기 위해 뭔가를 클릭하고 있었던 것.
3개월간 실험한 것들 (일부는 실패)
성공: Focus Time 블록 강제하기
매일 오전 10-12시를 "Deep Work" 블록으로 지정했다. 슬랙 알림 완전 끄기(진짜 완전히), 미팅 일절 금지. 처음엔 불안했다. "급한 거 있으면 어떡하지?" 근데 3개월간 진짜 급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RescueTime 데이터: Focus Time이 주당 평균 3.2시간에서 8.7시간으로 증가. 생산성 점수 상위 25% 일수도 11%에서 43%로 상승.
실패: 앱 차단 도구
Cold Turkey로 트위터, 유튜브 차단했다. 3일 만에 스마트폰으로 보기 시작. 의지력으론 안 된다는 걸 배웠다. 차단보단 대체 습관이 필요하더라.
성공: Weekly Review 루틴
매주 금요일 30분, RescueTime 대시보드를 본다. "이번 주 내 시간은 어디 갔나?" 데이터를 보면 거짓말이 안 된다. 슬랙 시간이 늘었으면 뭔가 비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있었다는 신호.
이 루틴을 시작한 후 평균 생산적 시간이 4시간 37분에서 6시간 18분으로 증가했다. 측정하는 것만으로도 개선되는 "Hawthorne Effect"의 위력.
반쯤 성공: 비동기 커뮤니케이션
슬랙에서 "급하지 않으면 쓰레드로, 더 급하지 않으면 Notion 코멘트로" 원칙을 만들었다. 팀원들이 처음엔 어색해했지만, 지금은 자연스럽다.
PM으로서 이게 어려운 이유: 우리는 "항상 접근 가능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근데 6개월 실험한 결과, 2시간 응답 지연으로 문제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우리의 불안이 만든 환상이었다.
6개월 후, 바뀐 것들
정량적 변화
- 일일 평균 생산적 시간: 4.6h → 6.3h (↑37%)
- 주당 Focus Time: 3.2h → 8.7h (↑172%)
- 앱 전환 빈도: 15.3분마다 → 28.7분마다
- 생산성 점수 상위 25% 일수: 11% → 43%
정성적 변화
더 중요한 건 이거다. 덜 바쁜 것 같은데, 더 많이 끝낸다. 예전엔 저녁 8시에 퇴근하면서 "오늘 뭐 했지?" 했는데, 지금은 6시에 퇴근하면서 "오늘 이거 다 했네" 한다.
디자이너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그때는 하루 종일 Figma에 박혀있었지만, 저녁엔 결과물이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PRD가 써지고, 데이터 분석이 끝나고, 로드맵이 그려진다.
당신이 오늘 할 수 있는 것
1. 일단 깔아라 (무료 버전으로 충분)
RescueTime 무료 버전이면 충분하다. Premium 기능(Focus Time 알림, 앱 차단)은 나중에 필요하면 추가하면 된다. 1주일만 써보고 데이터를 봐라. 충격받을 준비를 하고.
2. "Focus Time" 블록 하나만 만들어라
하루 2시간, 아니 1시간이라도. 오전이 좋다. PM은 오후에 미팅이 몰리니까. 슬랙 알림을 끄는 게 무섭다면, 상태 메시지에 "Deep Work 중, 12시 이후 확인"이라고 써라. 3개월간 이것 때문에 문제된 적 없다.
3. Weekly Review를 달력에 박아라
금요일 오후 4시, 30분. RescueTime 대시보드 보면서 "이번 주 내 시간이 어디 갔나" 확인. 이게 습관이 되면, 매주 조금씩 개선된다. 측정하지 않으면 개선할 수 없다.
마치며: 시간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PM이 되고 나서, 나는 "바쁨"을 정체성으로 삼았다. 바쁘지 않으면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근데 RescueTime은 보여줬다. 내가 바쁜 게 아니라, 비효율적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6개월 전 나처럼 "나는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어"라고 생각한다면, 데이터를 봐라. 시간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개선의 여지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데 걸린 시간: 약 8분. RescueTime이 "Reading & Reference"로 카운트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당신 차례다. 깔고, 측정하고, 개선하라.
진짜 생산성은 더 오래 일하는 게 아니라, 더 집중해서 일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