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약물 치료 6개월, PM이 말하는 솔직한 변화와 부작용
약을 먹기 시작한 이유
회의 중에 또 멍때렸다. 팀원이 세 번째로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순간 깨달았다. "아, 나 지금 아무것도 안 들었구나." PM으로서 6년차, 디자이너 출신으로 커리어를 쌓아왔지만 최근 1년간 뭔가 이상했다.
- 프로덕트 로드맵 작성하다가 유튜브 3시간
- 중요한 메일에 답장하는 데 3일 소요
- 15개의 브라우저 탭, 그 중 절반은 무엇 때문에 켰는지 기억 안 남
- 잘 때까지 머릿속에서 아이디어가 폭포수처럼 쏟아짐
정신과 예약을 잡기까지 2개월이 걸렸다. ADHD 진단을 받았고, 약물 치료를 권유받았다. 솔직히 처음엔 거부감이 컸다. "약에 의존하는 게 맞나?" "내 진짜 모습이 아니게 되는 거 아냐?" 하지만 현실은 명확했다. 이대로는 PM으로서 제 역할을 못 하고 있었다.
첫 달: 마법 같았던 시작
메틸페니데이트(콘서타) 18mg으로 시작했다. 첫 복용 후 1시간 뒤, 정말 이상한 경험을 했다. '고요함'이었다. 머릿속의 20개 라디오 채널이 동시에 꺼진 느낌.
1주차 변화 (정량적)
- 회의 집중도: 30% → 85% (주관적 평가)
- 하루 완료 태스크: 평균 3개 → 7개
- 이메일 응답 시간: 평균 48시간 → 4시간
- 포모도로 세션 완료율: 40% → 90%
디자이너 출신으로서 항상 비주얼적 사고에 강했는데, 약을 먹고 나니 선형적 사고도 가능해졌다. 로드맵을 순차적으로 작성할 수 있었고, 미팅 노트를 실시간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첫 2주는 정말 신세계였다. "아, 일반인들은 이렇게 사는 거구나." 동료들이 왜 그렇게 쉽게 업무를 처리하는지 이해가 됐다.
2-3개월: 현실과 마주하기
문제는 한 달이 지나면서 시작됐다.
부작용 리스트
- 식욕 완전 상실: 점심을 잊어버림. 오후 4시에 "아, 밥 안 먹었네" 깨달음. 6주간 4kg 감량.
- 수면 패턴 붕괴: 밤 11시에 누워도 새벽 2시까지 잠 안 옴. 약 효과가 저녁까지 이어짐.
- 창의성 저하: 이게 가장 충격적이었다. 브레인스토밍 세션에서 아이디어가 안 나왔다. 디자이너 출신 PM의 가장 큰 무기가 사라진 느낌.
- 감정 둔화: 좋은 일에도 흥분이 안 됐다. 제품 출시 성공 소식에도 "그냥 그렇구나" 정도의 반응.
의사와 상담 후 용량을 조정했다. 18mg → 27mg → 다시 18mg으로 내림. 고용량에서는 집중력은 더 좋았지만, 부작용이 견딜 수 없는 수준이었다.
PM으로서의 딜레마
우리 일은 집중력만 필요한 게 아니다. 발산적 사고, 공감 능력, 직관, 팀과의 화학작용. 약을 먹으면 PRD(Product Requirements Document)는 완벽하게 쓰는데, 유저 인터뷰에서 감정적 공감이 떨어졌다.
3개월차에 작성한 일기: "더 생산적이지만, 덜 나다운 느낌. 이게 트레이드오프인가?"
4-6개월: 나만의 균형 찾기
모든 것을 바꾼 건 '약물 휴일'이라는 개념이었다. 주말엔 약을 먹지 않았고, 평일에도 창의적 작업이 필요한 날은 건너뛰었다.
현재 나의 루틴 (6개월차)
- 월/화/목: 약 복용 → 분석적 업무 집중 (데이터 분석, 문서 작업, 스프린트 계획)
- 수/금: 약 건너뜀 → 창의적 업무 (브레인스토밍, 디자인 리뷰, 전략 회의)
- 주말: 완전 휴식, 약 없음
이 방식으로 3개월간 실험한 결과:
- 업무 생산성: 약 먹기 전 대비 60% 향상 (매일 먹을 때보다는 낮지만 지속 가능)
- 창의성 유지: 주관적으로 80% 수준 회복
- 부작용 감소: 식욕/수면 문제 50% 개선
약물 외의 보완 전략들
- 외부 뇌 시스템 구축: Notion에 모든 것을 기록. 생각나는 순간 바로 캡처.
- 환경 설계: 회의 전 5분 '전환 시간' 확보.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은 필수.
- 바디 더블링: 집중 작업할 때 동료와 화상 켜고 같이 일함. ADHD인에게 효과적.
- 마이크로 데드라인: 큰 프로젝트를 2시간 단위로 쪼갬.
약물 치료, 이것만은 알아두기
6개월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가이드:
✅ 약물 치료를 고려해야 할 때
- 업무 수행에 실질적 지장 (해고 위기, 프로젝트 실패 반복)
- 다른 방법들을 3개월 이상 시도했지만 효과 없음
- 자존감 저하, 우울감 동반
- 전문의의 정확한 진단 후
❌ 약이 해결 못 하는 것들
- 근본적인 습관과 시스템 부재
- 번아웃이나 동기 부여 문제
- 조직 문화나 업무 환경 문제
- 완벽주의, 미루기 습관의 심리적 원인
⚠️ 현실적인 조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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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3개월은 실험 기간: 용량, 타이밍, 약물 종류를 조정하며 최적점을 찾아야 함. 의사와 긴밀한 소통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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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용 기록 습관: 나는 스프레드시트에 매일 기록했다. 수면 시간, 식사량, 집중도, 기분, 창의성(1-10점). 패턴을 발견하는 데 결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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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알리기: 팀에 "ADHD 치료 중이고, 에너지 패턴이 바뀔 수 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오히려 배려받고 업무 조정도 가능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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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은 도구일 뿐: 마치 안경과 같다. 시력 나쁜 사람이 안경 쓰듯, ADHD인이 약 먹는 것. 죄책감 가질 필요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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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휴약 고려: 내성과 의존성 방지. 장기적 지속 가능성을 위해 의사와 상의.
6개월 후, 내가 배운 것
ADHD 약물 치료는 마법의 총알이 아니었다. 하지만 쓸모없는 것도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 삶의 '베이스라인'을 끌어올려주는 도구였다.
약을 먹기 전: 좋은 날 70점, 나쁜 날 20점, 평균 40점 약을 먹은 후: 좋은 날 85점, 나쁜 날 60점, 평균 70점
디자이너 출신 PM으로서, 나는 여전히 직관과 창의성에 의존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는 집중력도 갖췄다. 완벽하진 않다. 여전히 멍때릴 때도 있고, 약 먹는 날도 산만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이제는 내 뇌와 협상할 수 있다. 통제는 불가능해도, 관리는 가능하다는 걸 배웠다.
당신이 ADHD로 고민 중이라면:
약물 치료는 선택지 중 하나다. 유일한 답도, 필수도 아니다. 하지만 다른 모든 것을 시도해봤는데도 일상이 무너지고 있다면, 전문의와 상담해보길 권한다.
나는 6개월 전보다 더 나은 PM이 됐다. 더 나은 동료가 됐고, 더 나은 나 자신이 됐다. 약 덕분만은 아니지만, 약이 도움이 된 건 분명하다.
이 글은 개인적 경험담이며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ADHD가 의심된다면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담하세요. 약물 치료는 개인마다 효과와 부작용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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