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M이 7시간 숙면을 위해 버린 3가지 습관

5 min read0 viewsBy Colemearc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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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최적화라는 함정에 빠지다

2년 전 Apple Watch를 차고 잠든 첫날, 수면 점수는 58점이었다. 깊은 수면 42분, 렘수면 1시간 12분. 그날부터 나는 매일 아침 수면 데이터를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PM답게 스프레드시트를 만들어 수면 시간, 점수, 전날 활동을 기록했다. 3개월간 87개의 데이터 포인트를 모았고, 상관관계 분석까지 했다.

결과는? 수면의 질은 더 나빠졌다. 평균 점수가 58에서 52로 떨어졌다. 역설적이게도 수면을 최적화하려는 노력 자체가 불면의 원인이 됐다. 디자이너 출신으로서 사용자 경험을 설계할 때는 명확했던 인사이트가, 정작 내 수면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지금은 평균 7시간 20분을 자고, 수면 점수는 78정도를 유지한다. 하지만 점수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아침에 눈을 떴을 때의 '그 느낌'이다. 이 글은 그 느낌을 되찾기 위해 역설적으로 버려야 했던 것들에 대한 기록이다.

버린 것 #1: 완벽한 수면 환경 만들기

수면 최적화에 입문하면 누구나 환경부터 손댄다. 나도 그랬다. 암막 커튼(12만원), 백색소음 기계(8만원), 온도 조절 가능한 매트리스 패드(35만원)까지 구입했다. 침실 온도는 18도로 맞추고, 습도는 50%를 유지했다. 침대는 오로지 수면용으로만 사용한다는 원칙도 세웠다.

문제는 이 완벽한 환경이 오히려 압박이 됐다는 거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오늘도 못 자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출장이나 여행을 가면 더 심했다. 호텔 방 환경이 내 기준에 안 맞으면 그날 밤은 이미 망한 거였다.

전환점은 지난해 제주도 워크숍이었다.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에서 3일을 잤는데, 예상외로 잘 잤다. 7시간 30분, 7시간 10분, 7시간 40분. 이불 냄새는 좀 이상했고, 옆방 소음도 들렸지만 문제없었다. 깨달았다. 완벽한 환경은 필요조건이 아니라는 걸.

지금 내 침실은 평범하다. 암막 커튼은 그대로지만 온도나 습도는 대충 쾌적한 정도만 유지한다. 대신 '여기서 편히 쉴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전감에 집중한다. PM으로서 프로덕트에 불필요한 기능을 추가하지 않듯, 수면 환경도 과설계하지 않는다.

버린 것 #2: 수면 데이터 트래킹 강박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PM의 기본 중 기본이다. 당연히 수면도 데이터로 접근했다. Apple Watch, Oura Ring, 심지어 수면 앱 3개를 동시에 돌렸다. 매일 아침 30분씩 데이터를 분석했다. "어제 와인 한 잔 마셨더니 렘수면이 23% 감소했네", "저녁 8시 이후 운동하면 심박수가 안정되는 데 40분 더 걸리네".

3개월간 모은 데이터로 발견한 패턴들:

  • 카페인 섭취 후 수면까지 최소 8시간 필요
  • 저녁 운동은 수면 3시간 전까지만
  • 알코올 1잔당 깊은 수면 15분 감소
  • 블루라이트 차단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 없음

문제는 이 모든 규칙을 지키려다 보니 삶이 수면을 위한 전략 게임이 됐다는 거다. 오후 3시 이후 커피는 절대 금지. 저녁 약속은 운동 스케줄과 맞지 않아 거절. 금요일 밤 맥주 한 잔도 "내일 수면 점수" 생각하면 망설여졌다.

전환점은 스타트업 크런치 타임이었다. 제품 출시 2주 전, 매일 밤 12시까지 일했다. 수면 루틴은 완전히 무너졌다. 커피는 하루 4잔, 운동은 일주일에 한 번, 술도 가끔 마셨다. 당연히 수면 점수는 바닥을 쳤다. 50점대 후반이 평균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출시 후 2주가 지나자 자연스럽게 다시 잘 자기 시작했다. 별다른 노력 없이 7시간씩 푹 잤다. 깨달았다. 수면의 질을 결정하는 건 데이터로 추적 가능한 변수들이 아니라, 심리적 상태라는 걸.

지금은 Apple Watch만 차고 잔다. 데이터는 보지만 분석하지는 않는다. 대신 "오늘 잘 잤나?"라는 주관적 질문에 집중한다. 몸이 이미 알고 있다. 디자이너 출신으로서 배운 교훈 하나. 정량적 지표가 정성적 경험을 대체할 수 없다.

버린 것 #3: 규칙적인 수면 시간표

수면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매일 같은 시간에 자고 일어나라." 나도 그렇게 했다. 평일 11시 취침, 6시 30분 기상. 주말도 예외 없이. 알람 3개를 맞춰놓고, 11시가 되면 하던 일을 멈췄다. 친구들과 늦게까지 놀다가도 10시 30분이 되면 자리를 떴다.

6개월 정도는 효과가 있었다. 몸이 리듬을 익히면서 11시만 되면 자연스럽게 졸렸다. 아침도 알람 없이 6시 30분에 눈이 떠졌다. "역시 루틴의 힘이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고정된 스케줄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가져왔다. 10시 30분이 되면 조급해졌다. "30분 안에 집에 가서 씻고 누워야 해." 금요일 밤 프로젝트 회고 미팅이 길어지면 스트레스를 받았다. 10시 50분에 침대에 누웠는데 잠이 안 오면 "루틴이 무너졌어, 오늘은 망했어"라는 생각에 더 잠이 안 왔다.

전환점은 런던 출장이었다. 8시간 시차로 수면 스케줄이 완전히 깨졌다. 첫 3일은 지옥이었다. 새벽 2시에 눈이 떠지고, 낮에는 회의 중에 졸았다. 그런데 4일째부터 몸이 알아서 적응하기 시작했다. 현지 시간으로 밤 11시쯤 졸리고, 아침 7시에 자연스럽게 깼다. 규칙적인 스케줄 없이도 몸은 균형을 찾았다.

한국 돌아와서 실험을 시작했다. 고정된 취침 시간을 버리고, 대신 '졸릴 때 자기'로 바꿨다. 때로는 10시에 잤고, 때로는 12시에 잤다. 놀랍게도 총 수면 시간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7시간에서 7시간 30분 사이를 유지했다.

PM으로서 배운 교훈. 시스템은 유연해야 한다. 모든 유저가 같은 패턴으로 프로덕트를 사용하지 않듯, 수면도 매일 같은 패턴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평균이지 개별 데이터 포인트가 아니다.

실제로 지키는 3가지 원칙

버린 것들을 이야기했으니, 실제로 지키는 것들도 공유한다. 복잡한 루틴이 아니라 심플한 원칙 3가지다.

1. 잠자리 1시간 전: 자극 차단

노트북은 닫는다. 슬랙, 이메일, 업무 관련 모든 것은 차단한다. 대신 킨들로 소설을 읽거나, 유튜브로 별 의미 없는 영상을 본다. 요즘은 목공 ASMR에 빠져있다. 중요한 건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 가능한 콘텐츠다. 뇌가 긴장을 풀 수 있다.

예외는 있다. 출시 전날이나 심각한 장애 대응 중에는 이 규칙을 깬다. 그리고 그게 괜찮다는 걸 받아들인다. 한 번 규칙을 어겼다고 루틴이 무너지는 건 아니다.

2. 낮 시간: 충분한 에너지 소모

역설적이게도 밤에 잘 자려면 낮에 충분히 지쳐야 한다. 일주일에 3-4번은 운동한다. 헬스장에서 웨이트 1시간, 또는 러닝 5km. 시간은 상관없다. 저녁 9시에 운동해도 잘 잔다. (개인차가 있으니 실험 필요)

운동 못 한 날은 산책이라도 한다. 점심 먹고 15분, 저녁 먹고 20분. 하루 7000보 정도는 걷는다. PM 일이 대부분 앉아서 하는 거라, 의도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3. 침대: 수면 외 용도 금지

이건 유일하게 완벽하게 지키는 규칙이다. 침대에서는 절대 노트북을 안 펼친다. 책도 안 읽는다. (침대 옆 소파에서 읽다가 졸리면 침대로 이동) 침대는 오로지 자는 곳이라는 인식을 뇌에 심는다.

처음엔 어려웠다. 특히 주말 아침에 침대에 누워 여유롭게 뉴스 보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하지만 3주 정도 지나자 효과가 확실했다. 침대에 누우면 10분 안에 잠든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화된 거다.

수면은 최적화의 대상이 아니다

3년간의 수면 실험을 통해 내린 결론. 수면은 최적화의 대상이 아니라 회복의 과정이다. PM으로서 우리는 모든 걸 개선하고 측정하고 최적화하려 한다. 하지만 수면만큼은 그 접근이 역효과를 낸다.

역설적이게도, 더 잘 자려고 노력할수록 잠은 멀어진다. 대신 낮 시간을 충실하게 보내고, 밤에는 조용히 몸에 맡기면 된다. 몸은 이미 알고 있다. 얼마나 자야 하는지.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수면 최적화의 함정에 빠져있다면, 한 가지만 제안한다. 일주일간 모든 수면 루틴을 버려보라. 데이터 추적도, 고정된 스케줄도, 완벽한 환경도. 그냥 졸리면 자고, 충분히 잤다 싶으면 일어나라.

그 일주일이 당신에게 무엇을 알려줄지 궁금하다. 혹시 실험하게 된다면 결과를 공유해줘도 좋다. colemearchy@example.com으로.

잘 자는 것. 그건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놓아줌의 결과다.

PM이 3년간 수면 데이터 추적하며 깨달은 것 - 7시간 숙면 루틴